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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화투> 그림 사건이 형사로 진행되면서 논의되지 못한 저작권 이슈에 대한 소고

예술법 | Art Law

by 서유경 변호사 2021. 4. 1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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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과 화투그림 (출처: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4001360)


1. 들어가며

2010년대 후반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대작 사건은 바로 조영남의 <화투> 그림 사건이었을 것이다. 유명 연예인이자 화가로서도 명성을 날리던 조영남은 하루아침에 가난한 창작자를 착취한 악덕 미술작가가 되었고, 자신의 미술품을 구매한 매수인들에게는 사기꾼 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대작’과 ‘관행’ 사이에서 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에 걸쳐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검찰은 조영남을 사기죄로 기소를 하였고, 1심 법원에서는 유죄가 나왔지만 항소심 법원에서는 무죄가 나왔으며, 대법원 형사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은 2020. 6. 25.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대법원 2018도13696).

한편, 조영남은 2021. 2. 27. 중앙일보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아래와 같은 칼럼으로 풀어내었다. 판결에 대한 많은 평석이 있지만, 당사자의 글로 읽는 것은 또 다른 묘미이니 꼭 한 번 읽어보도록 하자. 

https://news.joins.com/article/24001360

 

"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 법정 빵 터진 조영남의 최후진술

"나이 80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까(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아이고! 조영남이 어느새 그렇게 늙었나’ 하시겠지만..."

news.joins.com


2. <화투그림 사건에서 대작이 논란이 된 이유

대작(代作, ghostwriting)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저작물을 작성하고 그가 저작자인 것처럼 발행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공중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계약에 의한 집필을 말한다.1) 대작은 대작가에 의해 작성된 저작물이 위촉자의 명의로 공표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것 자체로는 저작권법적으로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2)

조영남은 자신이 화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대작화가인 송기창 화백(이하 '송 화백'이라 함)를 찾았고, 송 화백은 조영남의 아이디어에 기반하여 그림을 그렸다. 이 사안은 조영남이 송 화백을 대작화가로 두고 그림을 그리게 한 뒤 형편없이 낮은 수준의 금액을 보상수준을 주었던 것으로, 윤리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사안이었다.3)

<화투> 그림 사건에서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흥미로운 점은, 조영남과 송 화백 사이에서 저작자가 누구인지 다툼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송 화백도 지난 2016년 10월 월간 미술세계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이다.4) 즉, 두 사람 사이에서는 조영남이 <화투> 그림을 창작한 것이라는 의사표시의 합치가 있었던 셈이다. 물론, 민법상 의사표시의 합치만으로 조영남이 저작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작자는 저작권법 상 아이디어를 창작적으로 '표현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어느 날 술자리에서 급여 수준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송 화백의 토로를 들었던 신문사 기자로 인해 대서특필되었고, 조영남이 매수인에게 타인의 미술저작물임을 고지를 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미술저작물인 것처럼 팔았다는 이유로 사기죄로 기소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대법원에서 조영남에게 형법상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기에 (동전의 양면관계처럼) 조영남이 저작자라고 보는 것이 무리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작권법적 측면에서 <화투> 그림 사건을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다.

 


3. 검찰은 왜 저작권법 위반죄로 기소하지 않았을까?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좌), 스티브 요한슨의 <아메리칸 렐릭스>(우) (출처: 조선일보)

검찰은 사기죄를 적용하기 전 미국에서 1992년에 발생했던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 사건을 검토하였다.5)6) <아메리칸 렐릭스(American Relics)>는 스티브 요한슨(Steve Johannsen)의 1987년 작품으로서 그랜트 우드(Grant Wood, 1981~1942)의 1930년 작품 <아메리칸 고딕>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 작품은 우드의 고향인 아이오와주의 전형적인 농가의 견고한 뾰족한 지붕을 가진 집 앞에 완고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녀를 그린 것으로서 ‘미국의 아이콘’이라 할 만큼 유명하며 미국 내에서 수 많은 패러디를 낳았다.

<아메리칸 렐릭스>는  잡지 <렐릭스(Relix)>의 커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려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렐릭스> 잡지는 위 그림을 자유롭게 복제·배포하였고, 이를 알게 된 요한슨이 저작권 침해로 관련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렐릭스>는 설립자인 키펠(Les Kippel)이 요한슨에게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을 패러디한 일러스트레이션을 주문하면서 농부와 쇠스랑 대신에 해골과 기타를 그리고, 그림의 제목을 <아메리칸 렐릭스>로 직접 지어주는 등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정해주었고, 그러한 이유로 공동저작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추상적인 소재를 구체화하여 가시적인 소재, 또는 표현으로 만든 사람만이 저작권자로서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렐릭스> 측은 공동저작자가 될 수 없고, "아이디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저작권은 직접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만 있다고 판시를 한 바가 있다.6) 즉, <아메리칸 고딕> 사건은 저작권법적으로 보건대, 검찰에게 유리했던 판결이다. 

그러나 검찰은 저작권법 위반죄를 배제하고 형법상 사기죄로만 조영남을 기소하였다. 저작권법 위반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인데, 이 사건에서는 송 화백이 스스로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작권법 위반죄를 적용하기 어렵다. 설령 송 화백을 저작자라고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송 화백이 조영남에게 1 점당 10만 원 내외의 대가를 받아서 매절로 저작권까지 양도한 것이 아니냐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측면에서 저작권법 위반죄로 기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7)

 


참고자료

 

1) 최경수, 『저작권표준용어집』,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1993), 13면; 김원오,「대작(代作)에 있어 성명표시의 취급에 관한 법적 쟁점」, 계간저작권 2012년 여름호 제25권 제2호(통권 제98호), 92쪽 재인용.
2) 김원오, 상게 논문 92쪽 참조.
3) 정상조, “[정상조의 생각] 조영남 대작사건의 핵심은 윤리”, 2018. 11. 13. 
4) 백용현·백지홍, “조영남 대작 논란 송기창 작가 인터뷰”, <월간 미술세계>, 2016.05., 41~43쪽.
5)Johannsen vs. Brown, 797F. Supp. 835(D. Or.1992), 
https://law.justia.com/cases/federal/district-courts/FSupp/797/835/1447341/ 
6) 연합뉴스, “‘화투화가’ 조영남, 대작 그림 의혹부터 검찰소환까지”, 2016. 06. 03.,
https://www.yna.co.kr/view/AKR20160603060800062
7) 연합뉴스, "조영남 '대작' 논란... 검찰 저작권법 위반도 검토하나(종합)",
https://www.yna.co.kr/view/AKR20160519143751062

 


서유경 (Yukyung Seo)

법률사무소 아티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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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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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site: www.artislaw.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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